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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전쟁과 과학 (1939~1950) === 제2차 세계대전은 루이나 과학의 성격을 바꾸었다. 정부는 전시과학연구개발국을 세워 대학과 기업의 과학자들을 전쟁 연구에 동원했다. 1932년부터 루이나 국립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있던 [[로런스 D. 페닝턴]]은 1940년부터 레이더와 근접신관 개발을 이끌었고, 이 밖에도 페니실린 대량 생산과 암호 해독용 계산기가 전시과학연구개발국의 성과로 꼽힌다. 국가가 돈을 대고 과학자에게 목표를 맡기면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때 증명되었다. 종전 뒤에는 이 체제를 평시에도 이어 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. 연구를 국가가 정한 목표에 맞출 것인가, 과학자의 호기심에 맡길 것인가, 연구비를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이 나눌 것인가, 과학계가 나눌 것인가가 쟁점이었다. 법안은 5년 가까이 표류하며 한 차례 거부권에 막혔다가 1950년 5월 10일 「국립과학재단법」으로 통과되었다. 그 사이 1949년에는 [[마틴 E. 로크하트]] 대통령이 루이나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페닝턴을 초대 소장에 앉혔다. 1949년 소련의 핵실험으로 냉전의 핵 경쟁이 시작되자, 루이나도 독자적인 핵무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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